가습기 살균제 사건 히스토리이다.
1. 사건 신고와 초기 역학조사
2011년 4월 25일 월요일 오전 10시경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과로 한 통의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아산병원 감염관리실 전화였다.
의료기관이 직접 전화로 질병 관리본부에 신고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최근 두어 달 사이 중환자실에 중증의
호흡곤란 증상을 보이는 임산부 폐렴 환자가 잇달아 입원한다는 내용이었다.
한두 명 이면 그냥 그럴 수도 있겠지 생각하겠지만 벌써 7명의 환자가 들어왔고 이 중 이미 1명은 사망했다고 하며 병원으로서는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어서 무언가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중국에서 시작하여 세계를 긴장시켰던 2003년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유행과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인 유행으로 많은 환자를 발생시켰던 2009년의 신종플루사태를 겪은 의료진으로서는 이번 임산부 폐렴 환자들도 뭔가 새로운 바이러스 질환이 아닐지 우려하고 있었다. 만약 그러한 우려가 사실이라면 정부가 하루라도 일찍 인지하고 대응을 시작하여야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료진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하여 정부의 역학조사를 요청하였던 것이다.
서울아산병원이 신고한 환자 7명은 모두 임신부 또는 출산 직후의 여성이었으며 이 중6명은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고 1명은 사망한 상태였다. 그런데 문제는 환자들이 거주하는 지역도 전국 각지로 서로 다르고, 임산부에서 생긴 중증 폐렴이라는 임상증상외에 특별한 공통점도 눈에 띄지 않는 상태라서, 왜 이러한 질병이 생겼는지 병원 측으로서는 도저히 짐작을 할 수 없으며, 현재 병원에서 해볼 수 있는 검사에서도 원인균이나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아 무슨 질병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이에 따라 질병관리본부 중앙역학조사반은 2011년 4월 26일 병원을 방문하여 호흡기내과 및 감염내과 의료진과 함께 일차적인 역학조사를 시작하고 첫 단계로 환자현황과 상태를 살펴보았다. 환자들은 모두 호흡곤란이 주된 증상이었고 20~30대 주산기(週産期) 여성이었으며, 같은 해 2월~3월경에 증상이 발생하기 시작하여 서서히
진행하다가 어느 시점 이후 증상이 급격하게 악화했다. 이들은 처음부터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것은 아니고 서울・경기・충청・전라 등 전국 각지에서 거주하던 분들로서 각 지역의 1・2차 의료기관을 거치며 진료를 받았으나 호전이 되지 않아 최종단계로 서울의 대형종합병원에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환자들은 진단명조차 단정하기 어려운 상태였는데 임상적으로나 영상의학 검사 소견으로 볼 때 바이러스성 폐렴과 간질성 폐질환의 특성이 혼재해 있었다.
그러나 호흡기 병원체에 대한 실험실 검사에서는 환자들 간 공통의 병원체가 확인되지 않았고, 감염질환에서 흔히 나타나는 발열이나 백혈구 증가와 같은 양상은 미약했다.
한편 항균제, 항바이러스제, 항진균제와 같이 감염질환에 투여하는 약물에 반응이 없었으며, 간질성 폐질환에 쓰이는 스테로이드제 역시 이 환자들에게는 효과가 미약하였다.
담당 의료진은 많아야 연간 1~2건 정도로 산발적으로 접할 수 있었던 사례가 최근들어 잇따라 나타나고 있고, 이러한 양상은 의료진의 15~20년의 경험에서는 본 적이없는 새로운 질환이라는 의견이었다. 모두를 긴장시키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조사 착수와 함께 추가적인 정보가 들어왔다.
서울 시내의 다른 대형병원에도 비슷한 환자가 입원 중이며 서울아산병원에 입원 중인 남성 환자 1명도 이들과 유
사한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의료진에 의해 확인되었다. 또한 소아청소년과 의료진도 유사환자가 소아에도 있으며 최근 수년간 이러한 증세의 환자들을 겨울과 봄에 주기적으로 봐왔다는 점을 알려왔다. 따라서 이 질환이 한 의료기관 만의 문제가아니며 특정한 성이나 연령대에 국한한 상황이 아닐 가능성을 고려하게 되었다. 중앙역학조사반으로서는 이들 환자의 규모가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어려운 당혹스러운 처지였으며 동시에 이를 제때 해결하지 못할 경우 피해가 얼마나 더 커질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출처 - https://www.kdca.go.kr/board/board.es?mid=a20504000000&bid=0014
2. 서울아산병원 사건 인지 경위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여성이 2011년 2월 말 호흡부전으로 서울아산병원을찾았다. 집중적인 치료를 해도 호전되지 않았다. 의료진이 여러 가지 검사를 다해보았지만 이 여성의 호흡부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점차 상태가 악화돼 호흡이 거의 불가능한 위급 상황에 이르렀다.
최후의 수단으로 체외순환막형산화요법(ExtracorporealMembrane Oxygenation, ECMO, 에크모 : 몸의 피를 밖으로 빼내 기계장치에서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몸속으로 집어넣어 생명을 유지하는 장치) 치료까지 했다. 젊은나이의 환자이기에 호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의료진은 보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버티지를 못하고 3월 초 숨졌다.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치료진들도 마음에 충격을 지 질의하였다. 5월 6일 질병관리본부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다학제(多學制) 역학조사를 수행하기로 하였고 가습기 살균제를 포함한 여러 환경 요인을 조사 대상에 포함하였다.
3. 소아청소년과 영역의 사건 인지
2011년 임산부를 중심으로 나타난 원인 미상 폐질환과 비슷한 사례는 이보다 5년앞선 2006년 소아들에게서도 이미 있었다. 2006년 3월에 들어서면서 서울아산병원소아중환자실에 원인을 알 수 없었지만 동일한 양상을 띠며 급속히 진행하는 호흡부전증 환자 3~4명이 거의 동시에 입원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 환자들은 입원 시 영상소견이 간질성 폐렴과 유사하였으나 기존의 호흡부전증 환자들과는 달리 어떠한 치료에도 반응이 없이 계속 악화되며 폐기흉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중환자실에서도 그런 환자들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 결과 유사한 질병을 앓는 어린이들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어 병원 의료진도 모르는 새로운 형태의 질환이 발생하고 있음을 인지하였다.
당시 의료진은 유사한 임상증상(간질성 폐렴 양상의 방사선 소견과 폐기흉을 보이는 질환)과 급격히 호흡부전증이 진행하여 어떠한 치료에도 반응이 없이 상태가 악화되는 급성간질성폐렴(Acute Interstitial Pneumonia: AIP) 환자들을 모아 모두 15증례에 대해 대한소아과학회지에 보고하였다(전종근, 2008). 당시 논문의 목적은 이런 질환이 발생할 수 있음을 다른 의료인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이들 환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늦겨울(2월)부터 초여름(6월)까지 주로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또 일반 호흡기감염 환자에게서 흔하게 경험하는 증상과는 달리 동반하는 가벼운 기침 외에 열이나 콧물 등 감기 전구증상이 뚜렷하지 않았다. 이밖에 증상시작 후 2~3주경에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는 등 호흡곤란이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약50% 이상에서 기흉이 발생하는 특징을 보였다.2008년에는 이미 이 질환이 봄철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환자 발생에대비하고 있었다. 당시 원인을 찾기 위해 서울지역 4개 대학병원(서울아산병원, 서울대학병원, 삼성서울병원, 연세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이 미리 모임을 갖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이러한 환자가 입원면 적극적인 정밀검사를 하기로 했다. 이에따라 2008년에 병원을 찾은 소아환자들에게 기관지내시경과 폐 조직 검사를 포함한여러 가지 검사를 시행하였다. 일부 환아들에게서 호흡기 가래(객담) 검체를 채취해 시행한 바이러스 및 세균 배양 사에서 다양한 종류의 바이러스 및 세균이 일부 검출되었지만 검사 결과들이 원인을 가리킬 만큼의 일관성이 없었다. 이뿐만 아니라, 이러한 검사 결과들과 전형적인 급성간질성폐렴과의 연관성이 의료계에 보고된 바 없어이 질환의 원인이 호흡기 감염 때문일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하였다. 당시 폐 조직 검사결과는 대부분 ‘급성 폐포 손상’ 소견이 관찰되었다.
이 질환은 주로 봄철에만 발생했고 생존율이 50% 정도에 불과해 질환의 정체를 밝히고 나아가 조기 발견과 대처를 위
해서는 전국적인 감시체계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하게 되었다(김병주, 2009).이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조사하는 후향적 연구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2006년이전에도 이 질환이 의심되는 환자들이 드물게 있었음을 의무기록 재검토와 방사선검사 소견을 통하여 다시 확인됐다. 이는 이 질환이 2006년 이전에도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이후 2009년과 2010년에도 유사 어린이 환자가 발생해, 정체불명의 이 질환에 대한 원인 규명을 위해 대상 환자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폐 조직 검사가 이루어졌다. 또각 증례가 발생할 때마다 의료진들은 임상과 영상 그리고 병리 소견을 일치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 결과 2010년에는 병리소견에서 초기 환자와 진행한 환자의 병리 소견이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고 기관지 주변의 염증 소견이 독특하게나타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흡입하는 공기 중에 포함된 어떤 성분에 의한 호흡기계 질환임을 내비치는, 매우 중요한 정보였다(Lee et al.,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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